묵시문학이란 무엇인가? #정의 #Apocalypsis #묵시 #계시록
기독교인들에겐 친숙하지만, 읽기는 어려운 그런 책이 하나 있죠. 바로 요한계시록인데요. 이렇게 계시록과 같은 비밀스러운 책들을 묵시문학이라고 부릅니다. 이 "묵시"라는 단어는요. 당시 그리스의 언어인 헬라어로 아포칼립시스(Apocalypsis)라고 하는데요. 마치 덮개를 벗겨내는것 처럼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묵시문학은 신실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부터 출발하는데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악을 멸하실 것이라는 그 믿음이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외부의 억압을 받았던 유대사회에서는 이 종말이라는 것이 두렵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의미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 되었죠. 왜냐하면 억압을 받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종말의 때가 도래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세상권세를 쥐고 있는 악한 세력들을 멸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실 테니까요. 우리가 보통 종말이라고 하면 재앙이나 불길한 징조들을 떠올리기 쉽죠. 하지만 그들에게 종말은 곧 희망이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분명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받는 시대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은 이 세상의 종말을 바라고,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말을 다루는 묵시문학은 언제부터 등장하기 시작했을까요? 그 시작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구약과 신약 중간 사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성경책의 위치로만 보면요. 구약의 말라기와 신약의 마태복음 사이의 약 400년이라는 그 시기 사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대략적으로 주전2세기에서 주후2세기 사이에 많은 묵시문학들이 집필이 되는데요. 이 많은 묵시문학의 내용들은 대체적으로 세상의 종말과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가 묵시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따라서 그들에겐 물리적인 시간과 물리적인 공간의 마지막에 대해 전혀 얽매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이 세상이 끝이 나야만 새로운 세상이 다가올테니까요.
[영상 시청을 원하시면 아래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대체 왜? 세상의 종말을 다루는 묵시문학이 등장하게 됐을까? #종말 #묵시문학의 출현
구약과 신약의 중간시대에 대체 무슨 이유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종말을 기대하고, 또 왜 그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을까요? 그들은 분명 자신들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윗과 같은 메시아를 통해서 말이죠. 그런데 그들은 지금 현재, 이 세상속에서 또 자신들의 역사속에서 희망을 찾지 않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멸망을 바라고, 또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고 있죠.
하나님의 백성은 페르시아가 패권을 장악한 후에 고레스왕의 조서로 인해 고향인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는데요. 하지만 이스라엘 땅은 이미 주변 이방민족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일부 소수의 이스라엘 백성만이 남아 있었던 상황이었는데요. 이렇게 이스라엘 땅을 차지하고 있던 이방민족들로 인해서 하나님의 백성은 귀환 이후에도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고, 사회, 정치, 문화 그리고 신앙적인 측면에서 이방민족과의 대립은 그들에게 지속적인 고통과 절망을 안겨주게 됩니다.
그 이후에도 소아시아 지역과 이집트, 그리고 인도까지 점령하며 대제국을 이뤘던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통치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알렉산더 대왕이 생을 마감하고, 그가 다스리던 지역들은 분할 통치를 받게 됩니다. 그 중 유대 지역은 셀류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의 치하속에서 강렬한 억압을 받게 되는데요. 이 시기는 억압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고도 볼수 있어요. 이 때 급진적인 헬레니즘 정책이 펼쳐지면서 율법낭독과 할례가 금지 되고, 또 성전까지 모욕을 당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민족말살 정책으로 인해서 유대인들은 야훼신앙을 위협받게 되고 점점 비관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끝나지 않는 이 고통의 시간들로 인해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상황들은 그들에게 현실과 타협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정황속에서 묵시문학이 등장하게 되요. 당국의 적발과 처벌을 피하기 위해 노골적인 메세지를 피하면서 유대인들만이 알고 있는 상징적인 표현과 위인들의 이름을 사용해서 이 고통속에 있는 백성들을 위로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은 수많은 전쟁과 재난의 역사를 경험한 민족이죠. 다윗왕조 이후에 분열왕국을 거쳐서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고 그리스-로마제국까지 이어지는 그 억압의 경험들, 구약과 신약의 중간시대에 마카베오 혁명을 통해 자치정부를 수립했음에도 불구하고 부패하고 타락해버린 그런 지도층을 경험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속에서 또 이 역사속에서 희망을 차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게 만들어 버렸죠. 그들은 이제 그들이 그토록 바래왔던 다윗 시대의 영광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희망을 이 세상을 초월한 우주적인 관점에서 제시하게 되는데요. 그것이 바로 묵시사상입니다. 현재의 역사안에서 이 역사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초월한 새로운 세상에 희망을 두는 것이죠. 그들이 처했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짐작해볼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포로귀환 이후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상활들은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찾게 만들었고, 또 이런 과정에서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신화와 종교의 개념을 채용하게 되는데요. 신의 개입, 부활과 심판, 투쟁, 새로운 시작과 같은 이런 개념들을 유대교와 결합 시키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바랐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였던것이죠.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야말로 그들의 구원과 직결되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종말의 때에 등장하는 중재자는 당연히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이시겠죠. 이런 정황들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게 되었던 것이고, 이로인해 종말의 때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묵시사상은 종말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증폭시키고, 또 이 세상의 불의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고취하는데 기여하게 되죠.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에서 경험하고 있는 외부 세력의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인 억압은요. 이 묵시문학에서 표현되는 재난들을 이해하기에 아주 충분했을 것입니다. 또 이런 묵시문학을 통해 그들이 기다리던 구원의 날이 가까이 왔음에 대한 확신과 기대가 증폭되었을 것이고요. 지금의 고통이 묵시문학을 통해 희망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후에 유대교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게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주후 70년 유대-로마전쟁으로 인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한 이후에 묵시사상을 통한 종말의 희망이 증폭이 되는데요. 이러한 기대는 이후에 또 다른(제2차)유대-로마전쟁(바르 코흐바 반란,132-135)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로 인해서 유대사회는 성전 중심에서 이제는 랍비를 중심으로 한 회당과 율법 중심의 체제로 변화하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유대 묵시사상이 기독교의 요소들과 결합하여 보존되고 확장되게 되었던 것이었죠.
우리는 구약의 예언 혹은 계시와 이 묵시의 차이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요. 계시는 이 세상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와 관련이 있죠. 그러나 묵시사상은요. 현재 이 역사속에서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 즉 새로운 세상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런 묵시사상에서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는 그림이나 이미지 등 다양한 형태로 묘사가 되었고, 또 수정과 확장을 통해서 그들의 기대와 희망으로 표현되어지게 되었던것이죠.
묵시문학의 특징들 #이원론 #상징 #숫자 #사탄
구약과 신약의 중간시대부터 다양한 묵시문학이 집필이 되는데요. 예를 들면, 다니엘서, 에녹서, 모세승천기, 바룩의 묵시록, 에스드라 4서, 아브라함 묵시록, 에스라의 묵시록 같은 많은 묵시문학들이 등장을 합니다. 대부분은 민족의 위기 상황속에서 등장을 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하죠.
1.저자 그리고 이원론
묵시문학의 특징을 살펴보면, 책의 저자는 익명으로써 누가 썼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존경하는 위인들의 이름들이 그 책의 이름으로 사용이 되었죠. 모세, 아브라함, 에녹, 바룩처럼요. 이것은 당국의 검열을 피하려함과 동시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전통과 율법에 정통한 율법학자들이 이 묵시문학의 저자로써 가장 유력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이죠. 묵시문학의 내용을 보면 상징적인 언어와 메세지를 포함하고 있고 또 미래 형태의 환상들을 보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승리로 결론 지어지게 되죠. 또 이원론, 이분법적인 사고가 나타나는데요. 지나가는 세상과 다가오는 세상 그리고 선과 악이 투쟁하는 세상, 심판과 구원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둘로 구분하는 이유는요.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면 자신들을 고통속에 내버려두지 않을것이라는 그 믿음 때문인데요. 이 세상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지 않아야만 자신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들을 이해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 이 시대를 비관적으로 여기고 있는것이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2.율법준수에 대한 믿음 강화, 선민사상의 약화
또 자신들이 경험한 역사들, 특히 포로시대를 통해서 아무리 선택 받은 민족이라도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된다면 자신들 역시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이제는 토라, 율법을 준수하는 것만이 구원을 획득할 수 있는 기준으로써 여겨지게 되죠. 또 구원이 민족적인 차원이 아니라 개인의 차원에서도 다루어지게 됩니다. 이제는 선조들을 통해 기대하고 있었던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이루어져야만했던 구속사에 대한 믿음이 약화 되죠.이러한점에서 기독교와의 차이점이 발견 되는데요. 유대교는 율법준수를 강조하고,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재림을 종말의 때로 보는데요.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이 곧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는 날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기독교는 유대 묵시사상을 수정하고 보충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3.숫자
또 하나의 특징은요. 노골적인 메세지를 피하기 위해 시간과 숫자가 묵시사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요. 고대사회에서는 이 숫자에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을 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충만을 의미하는 숫자 7, 질서를 의미하는 숫자 4, 완전함을 의미하는 숫자 12 등 이런식으로 묵시문학은 숫자와 시간에 종말적인 기대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요. 묵시사상이 묘사하는 숫자와 시간, 그리고 기괴한 모습의 동물이나 짐승들 같이 이런 상징적인 것들은 당시 유대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시대에 많은 연구를 통해서 이 상징들이 의미하는 바를 추정해볼수는 있지만,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서 유대사회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 섣부른 추측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더욱이 주의해야할 것은 이런 상징들의 의미를 오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겠죠.
4.사탄
우리가 구약에서 알수 있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통합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었죠. 이원론적으로 어떤 현상을 둘로 나누지 않습니다. 그들은 선과 악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고 보는데요. 그러나 자신들의 고난과 고통의 역사속에서 그들은 악에 대한 의문들을 품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들에게 이 세상은 악한 세력이 통치하는것으로 간주 되었고, 이 "악"은 히브리어로 적대자를 뜻하는 악마적 권세인 사탄에게 돌려지게 되었죠. 신약에서도 사탄은 악마적 권세로 묘사가 되고 있는데요. 따라서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은 그들의 바램대로 끝이 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종말은 곧 악한 세력의 멸망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곧 희망이었던 것이었죠.
댓글